글모음/해송(海松 )
[스크랩] 버스 안의 노신사
한스 강
2007. 11. 12. 18:03
얼마 전에 시내 나갔다가 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어느 정류장에 70은 넘어 보이는 노신사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버스는 당연히 정차를 했고 이 노신사는 마땅히 타야 했지요.
헌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노신사를 배웅 나온 듯한 또 다른 노인이 작별이 영 아쉬운 듯 노신사의 손을 붙잡은 채 자꾸 말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운전기사는 탈거냐 안 탈거냐 소리를 질렀고 노신사는 당황해서 배웅 나온 노인의 손을 뿌리치듯이 하며 황급히 버스에 올랐지요.
노신사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좌석으로 가 앉았지만 운전기사는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차를 출발시킨 뒤에도 노신사를 향한 잔소리가 계속됐습니다.
버스가 왔으면 얼른 버스를 타야지 얘기를 하는 데가 어딨냐, 배차 시간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 아저씨 같은 분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애를 먹는지 아냐 등등....
기사의 잔소리가 길어지자 노신사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는 나름대로 사과를 했는데 저건 너무 하지 않냐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잔소리가 끝나지 않자 노신사가 벌떡 일어나 운전석 쪽으로 향했습니다. 일촉즉발의 분위기... 둘 사이에 한바탕 크게 대결이 벌어지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게 웬 일입니까.
운전석으로 간 노신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오직 한 음절, “끝” 뿐이었습니다. 노신사는 자신의 입술에 손가락을 세로로 그으며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끝...” 했습니다. 그러자 승객들 사이엔 웃음이 터졌고 사람 좋아 보이는 기사도 덩달아 싱긋 웃고 말더군요.
사건은 그렇게 “끝”이라는 한 음절 말로 조용히 그야말로 ‘끝’이 난 것이지요.
선거의 해가 됐습니다.
연초부터 나라가 온통 시끌벅적합니다. 대선, 물론 중요하지요. 하지만...
버스 안의 평화스러운 풍경처럼 너무 시끄럽지 않게, 이전투구의 형상을 띠지 말고, 순리적으로, 편안하게... 전개되고 마무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출처 : 아름다운 60대
글쓴이 : 백발청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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