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족제비 너 이놈
족제비 너 이놈
산봉우리에 우뚝 고고하게 서 있는 소나무 한그루, 호수위에 노니는 한 마리의 백조, 아장아장 걸어가는 비둘기 한 마리. 사람이든 짐승이든 심지어는 식물까지도 혼자 있으면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내가 정년퇴직 하고 전원생활을 하고 있을 때 때었다. 어느 해 겨울. 눈이 무릎까지 쌓이자 산토기 오소리같은 짐승들이 먹을 것을 찾아 집 마당 까지 내려온 일이 있었다. 겨울햇살이 포근한 어느 날 한낮이었다. 닭장에 모이를 주려고 갔더니 산비둘기들이 내가 오는 줄도 모르고 닭 모이를 먹고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비둘기를 닭장에 가두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살금살금 다가가서 문을 얼른 닫고 세어 보니 모두 8마리였다.
산비둘기 집을 새로 짓고 먹이를 주며 잘 보살펴 주어도 며칠 동안은 먹이도 잘 안 먹고 불안해 하더니 일주일이 지니자 모이도 먹고 잘 적응해 가고 있었다. 자연에서 사는 것도 좋겠지만, 추운겨울 먹이 걱정 없고 독수리같은 천적으로 보호받고 걱정 없이 겨울을 보낼 수 있으니 비둘기로서는 다행스러운 것 아니냐고 나 나름대로 편리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겨울을 잘 보내고 따뜻한 봄이 왔다. 아내는 겨울도 갔으니 자연으로 보내라고 성화를하고 나 역시 이놈들을 자유롭게 놔주고 싶었지만, 그동안 정이 들어서 선뜻 놔줄 수가 없었다.
놈들은 봄이 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짝짓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수컷이 짝짓기를 성공하려면 암컷 앞에서 가진 아양을 다 떨어야 한다. 암놈머리를 부리로 쪼아 긁어 주고 입을 맞추고 그 앞에서 수없이 머리 숙여 꾸벅꾸벅 절을 한다. 이렇게 하루 종일 구애를 해서야 암놈이 마음에 들면 몸을 가볍게 낮추어 수컷을 받아 드릴 자세를 취해 준다.
이렇게 한 가족으로 정을 쌓아가고 있으니 자연으로 보내는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었다. 새싹이 움트기 시작하는 3월이 왔다, 어느 날 아침 모이를 주려고 비둘기장으로 가서보니 비둘기 2마리가 털이 뽑힌채 상처투성이로 땅에 떨어져 죽어 있었다. 홰에 3마리만 앉아있고 3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살펴봐도 외부로 부터 침입한 흔적을 발견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보니 쥐구멍 정도의 땅굴이 보였다. 틀림없는 족제비의 소행임이라고 판단하고 구멍에 끈끈이와 쥐덫을 설치 해 놓았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갖가지 종류의 짐승도 기르고 했지만, 내가 직접 잡아서 보호 했기에 더욱 애착이 갔던 산비둘기 이였다. 죽어 있는 비둘기를 보니 마음이 아파 왔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으로 특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새다.
특히 산비둘기는 자연에서 서식하면서 사람에게 해 끼치는 일 없이 버려지고 남아도는 식물의 열매만 먹고 사는 새다.
얄밉고 혐오스럽게 생긴 족제비가 벌래도 잡아먹지 않고 야생의 풀씨나 나무열매만 먹고 사는 순하고 다정한 비둘기를 잡아먹었다고 생각을 하니 더욱 분통이 터졌다.
다음날 아침 일직 비둘기장으로 갔다. 예상한대로 족제비 한 마리가 끈끈이에 온몸이 붙어있고 다리 한쪽에 쥐덫에 치어 눈에 독기를 품고 나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남아 있던 3 마리 중 2마리를 잡아먹고 도망가려다 덫에 걸린 것이다.. 남아 있는 비둘기 한 마리가 혼이 다 나가서 홰 끝에 앉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나는 미리 준비해 가지고간 몽둥이로 족제비를 사정없이 내려 쳐서 단숨에 박살을 냈다. 몸통이 커다란 쥐만하고 길이는 50cm 정도 되는데 진갈색 털에 머리통은 쥐처럼 생겼지만, 생겨 먹은 것이 혐오스럽고 징그러웠다.
내가 애지중지 보호했던 산비둘기를 잡아먹은 것을 생각하니 화가 치밀어 몽둥이로 죽은 놈을 또 내려첬다. 내가 생각해도 지나치다 싶었지만, 그 순간에는 오직 비둘기들의 원수를 갚아 주어야 하겠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원수를 갚았다는 생각은 잠시고 눈도 감지 못하고 죽어있는 족제비를 보니 내 마음이 이중 삼중으로 아파 왔다. “이놈 죄 없는 비둘기를 7마리나 잡아먹었으니 너는 그 죄를 받아 마땅하다” 하고 속으로 살생한 나 자신을 변명했다. 사실 나는 닭 목도 비틀지 못하는 위인인데 잔인하게 족제비를 때려잡았다는 것이 신기했다.
혼자 남아 있는 놈은 먹이도 잘 먹지 않고 밖으로 나가려고 이리 나르고 저리 날아서 철망에 매달려 나갈 구멍만 찾았다. 더 이상 가두어 길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어느 날 아침 비둘기장으로 가서 보니 마지막 남아 있던 그 놈 마저 철망에 목이 끼여 죽어있었다. 자살을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들었다.
내가 그놈들을 새장에 가둬 기르기로 작정한 애초의 발상이 잘못되었음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나는 그놈을 양지 바른 곳에 잘 묻어주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모두 내 잘못이라고 미물이지만, 용서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