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소스 겸용)/카페 글

돌아갈 때와 장소

한스 강 2021. 3. 22. 22:27

오래 전의 기억 편린들,

 

그는 당시 30 중반이 안된 나이였으나 생을 접어야만 하는 처지였다.

평상시 굳건하던 그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며 눈물을 보였을 때

나도 어찌 바를 몰라 -편히 가고 나중에 만나자- 라고

꽤나 어색하게 응답 했었던 같다.

 

옆에 머물며 소위 안락사의 과정을 지켜보는 밖에 우리가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젊은 의사의 손놀림도 무척이나 떨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10 여분 이미 차가워진 그의 육신을 홀로 방에 놔두고 응접실에 모여있던 우리들은

이상야릇한 분위기에 억눌리어 꽤나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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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때가 왔나 보다 생각하며 급하게 비행기에 올라탄 후,병원에 도착하니

부친은 가쁜 표정으로 누워 계셨다.

 

길어야 2-3 일이라는 예상은 부친의 강한 의지력 탓인지 , 2 주로 넘어가자

나는 초초해 지기 시작했다.한 달 휴가를 내었으나 병원에서 꼼작 못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미루어 놓고 많은 일들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부친 이미 페이지를 접어야 하는 위치라면,나는 아직 살아가야만 하는

생활인이라는 점의 차이랄까.

 

할 수 없이 다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며 이미 가망성은 제로이지만 생의

의욕으로 버티시는 부친과, 10 여년 본인의 의지로 순식간에 가버린 후배의

얼굴이 오버랩 되어 여러가지 상념이 떠오름은 어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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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초대 받아 일식집 치고 부담스럽지 않은 곳에서 이것저것 먹고 있던 ,

정종 대신 양이 많은 맥주를 마신 탓인지 가끔 말썽을 부리는 장이

갑자기 요동을 치니 어찌하랴 화장실로 직행,일을 보던 중,갑자기 아랫도리 보다

머리가 어질어질 ,식은 땀이 나고 맥이 빠지며 그냥 눕고 싶은 마음밖에 없으나

까발린 아랫도리를 추밀 기력도 없고 이대로 화장실에서 자지러지면 꼴이 말이 아닐 텐데,

 

저절로 나오는 신음소리,얼굴은 비지땀으로 범벅, 우스운 꼴로

쪼그리고 앉아 버티는 순간은 나로서는 지옥이였다.

 

급한 순간에도 화장실에서 사람살려! 안했음이 다행이지,몇분 후 약간 괜찮아져

겨우 아랫도리 여미고 일행이 앉아있던 자리로 기어 오다시피 하니,일행이 창백한

안색을 보고 심상치가 않음을 알게되어 모처럼 즐거웠던 회식은 급하게 파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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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를 떠나보낸 지 27 년, 부친과 이별한 지 16 년, 화장실에서 지옥을 경험한 후,

결국은 수술대에 누어 혈관질환 치료한 지 7 년의 세월이 흘렀다

시간의 흐름속에 나는 아직도 살아 버티고 있음은 축복인가?

 

죽고 사는 건 하늘이 정해준 이치에 따라야 하고 내 의지로는 안되는 일이지만

돌아갈 때는 몰라도 장소만은 내가 원하는,평소 지내던 내방에서

좋아하는 비발디 실내악을 들으며 작벌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작금까지 무신론자를 자처하며 버티고 있지만 가끔 생각하던 성당이라도 찾아가

주여, 이 어린양을 굽어살피시어,내 살던 곳에서 평안하게 돌아갈 수 있게 하소서

 

당신에게 무릎 꿇고 진심으로 내 생을 회개하며 기도 드리면 그 소원이 이루어질까?

모를일이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