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소스 겸용)/카페 글

주말, 도봉산에 올랐습니다

한스 강 2022. 1. 23. 21:26
 

Shubert ; String Quartet No 14 in D, " Death and Maiden " 2 악장

 

졸리면 자고 눈이 떠지면 일어나고, 아침 9시 반경 백수의 일상이 시작됩니다

이번 한국행에 내 좋아하는 북한산을 아직 가보지 않았는데 입구까지 편도만 시간 반 여 걸리니

가까운 도봉산으로 결정했습니다

 

물 한 통, 사탕 2알, 초콜릿 1개. 사과 1알 챙기고 도봉산역에 도착하니 12시경

일요일임에도 단풍 시즌이 끝나고 날씨가 흐린 탓인지 등산객이 별로 없으니

북적이던 때가 차라리 좋았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습니다.

 

등산 초입에 앞서가는 아저씨가 요사이 대세라는 트로트를 어찌나 세게 틀어대는지,

잠시 길 가 벤치에 앉아 남자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려 봅니다.

음악은 감미로운 것이나 때로는 고요가, 자연의 말 없는 속삭임이 더 좋을 때도 있습니다.    

 

오늘도 색소폰을 부는 분이 출근했습니다만  바로 그 앞에서 처음 보는 남자가 스피커로

음악을 세게 틀고 온정을 구걸하고 있으니 이건 완전히 영업방해입니다.

오늘은 초장부터 음악이 문제로군요.

 

인상 좋은 색소폰 아저씨는, 무슨 사연으로 저 자리를 한결같이 지키고 있는지 모르지만

도봉산 명물이라 불려도 좋은, 익숙해져 정이 가지만 오늘 처음 보는 저 남자 때문에

열심히 불고 계신 색소폰 소리는 아예 들리지 않으니 내가 공원 관리인이라면 갑자기 나타나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저 남자를 당장 쫓아내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고 걸음을 재촉합니다.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는 한적한 산길을 걷노라면 그야말로 무념무상,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그 시간의 고요함이 참 좋습니다.

 

암자를 찾아오는 객들의 숙소로 사용했을 지금은 거의 폐가가 되어버린 곳,

마루턱에 앉아 잠시 숨을 고릅니다. 이곳에서 떨어지는 낙엽도 보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냄새도 맡아보고

그리운 사람도 떠올려보고, 약간은 센티멘탈한 기분으로 시간을 잠시 보내다

조금만 더 오르면 산의 중턱에 다다릅니다. 여기서 하산이냐, 계속이냐 양자택일해야 하는데

오늘 운동량은 이로써 충족하였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조금 늦게 산행을 시작한 탓인지 올라 갈 때는 한적하던 길가는 어느 사이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양편에 늘어선 음식점에는 서로 모여 환담을 하며 즐겁게 지내는 사람들로 가득하니

제가 끼어들 장소는 아닌 것 같습니다

 

들고 간 사과 한 조각도 입에 대지 않아 알코올로 간단히 목을 축이고 귀가할 생각이여

근처를 기웃거리다 보니 전철역이 가까워지는 즈음 산꼼장어 구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오네요.

꼼장어 구이, 오래전 애용했던 포장마차 메뉴가 생각나 반가움에 가게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이 많지 않으니 혼술 하기에도 적합한 것 같아 들어섰습니다

 

혼술, 혼밥이 유행이라 하나 때론 내 의도와는 다르게 혼술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는

내 처지 탓이지 제가 선호하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떠들썩하게 단체로 모여 술자리를 나누는 것도 번거롭지만 혼술도 그 적막함, 외로움이 싫습니다.

내 좋아하는 안주 앞에 놓고 둘이서 혹은 네댓이서 모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나누는

그런 오붓한 술좌석이 좋습니다  안주 1인분은 안된다 하니 억지춘향격으로 2인분을 주문해야

하는 것도 혼술의 단점 중의 하나이지요

 

약간 도수가 높다 하는 빨간 소주를 공복에 한 두 잔 들이키니 뱃속이 따뜻해지며

혼술의 외로움은커녕 충만감이 몸 전체에 가득 퍼지는 듯 아늑한 기분입니다.

 

술집 분위기도 시끄럽지 않고 자리 잡은 곳이 마침 창가이어 각양각색의 오가는 사람들을

소주잔을 홀짝이며 물끄러미 쳐다보는 이 시간도 산길을 걷는 고요함 못지않은 평화로움입니다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백수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오랜만에 꼼장어구이를 안주로 소주 한 잔 하는 도중

당신이 내 앞에 앉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답니다.

 

덕분에 나는 평안하고 즐겁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내 걱정 말고 당신도 항상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