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소스 겸용)/카페 글

덧없이 세월은 가고

한스 강 2022. 3. 6. 23:02
갑작스레 겨울 태풍이 유럽에 몰아쳐 그 여파로 오늘까지도 비를 동반한 강풍이 부니
산보를 나갈 수 없을 정도로 우중충하고 우울한 날의 계속이군요.


언젠가,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난 날이기도 해, 또 다른 마지막 이별의 날로 정하고
유언대로 암스테르담 외곽에 자리잡은 거대한 공동묘지 한구석에
우리 님의 재를 뿌린 날도 이렇게 바람이 불고 비가 몰아치던 날이었지요.


강우량이 그리 많지 않고 곧 그치는 이곳이지만 그날따라 웬 비가 그리 많이 오시는지, 

정신이 산란한 와중에도, 타국에서 생을 마치게 된 사람 중, 자기 태어난 땅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나 그러지 못하는 고인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곳에


그의 재를 뿌리려 한 움큼 쥐니, 아직 식지 않았는지 까칠하지만 따뜻한 촉감이 느껴져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어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 없어
유치한 표현처럼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통곡을 했답니다.

그와 지냈던 수많은 사연, 추억들은 이제 내 마음속에만 남아있고 그의  흔적들은 

순식간 사라지고 이제 가까웠던 사람들조차 그를 서서히 잊어갈 터인데,  
나 혼자 남아, 죽는 날까지 그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도저히 남은 세월을 어찌 견딜지 막막한 기분이 들어 차라리 망자를 따라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세월은 무심하다더니 그새 8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당시 통곡하던 저에게 지인이 건넨 말이 생각납니다.


- 지금은 죽을 것 같아도 그 마음 가라앉으려면 한 2년 걸릴 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 서서히 잊어야지, 아니 저절로 그렇게 돼 -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도 그리 간사한 것인지 그분의 말씀이 사실이더군요. 


시도 때도 없이 쳐다보며 눈시울이 붉어지던 그의 얼굴도 가끔 보게 되고,
1-2개월의 간격으로 꽃을 들고 찾아가던 것도 일 년에 서너 번으로,


세월이 가면서 서서히 변해 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노라면
그 허망함에 몸 둘 바 모르겠습니다.

- 당신, 당신이 사랑하는 고국으로 돌아가세요. 가서 평소 하고 싶다던
  글도 써보세요, 자서전 같은거 괜찮을 거 같아요.
  어떤 사람에게는 당신의 삶의 기록이 흥미롭고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살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말은 천만부당 옳으신 말씀이나, 
아직도 이 땅에 남아 허우적대며 그를 서서히 잊어가고 자서전은커녕 글쓰기 조차 게으른

나 자신을 발견하면 허망하고 우울해지는 것은 저 망할 놈의 날씨 탓이려니 돌려 보지만,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한숨만 절로 나오는 축축한 오후 나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