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원의 행복
숫이 없고 결이 약해, 벗으면 둥그렇게 자국이 남아 모자 쓰기를 기피하다
흰머리가 많아 늙게 보인다는 말을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어 외출 시 모자를
쓰다 보니 방한 효과도 있어 마음먹기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연히 도봉산 초입 널려있는 가게에서 저렴한 모자 하나를 구입 착용하다 보니
마음에 들어 다른 색으로 하나 더 장만하기 위해 산보 겸 다시 들렸다,
찍어놓은 모자 쓰고 거울을 기웃기웃,
내친김에 서너개를 써보는 중, 옆 인기척을 느껴 보니
주인장인 듯 늙수그레한 사내가 내 모양새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씽끗 웃어주고 다시 모자 하나를 쓰고 거울을 보니 마음에 들듯 말듯,
벗어 다시 제자리에 놓는 중, 갑자기
- 어떤 모자도 어울리지 않으니 그냥 가세요. -
퉁명하고 신경질적인 목소리. 모자 서너 개 써본 죄밖에 없는데
당황이 순식간에 기분 나쁨으로 변해 내 목소리가 커졌다.
- 여보, 내가 당신 모자를 훼손 시켰어 더렵혔어. 그냥 몇 개 써봤다고 손님한테 그러면 돼,
그런 식으로 장사하지 마쇼 -
- 내 맘요,-
-그래 나도 내 맘이라 이거저거 모자 써봤다, 이 자식아-
마침 행인들이 - 장사하는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아저씨가 참으세요-
내 편을 들어 말렸기에 망정이지 자칫하면 내 입에서 더 심한 쌍소리가 나올 뻔했다.
근처를 몇십분 산책하다 보니 화가 어느 정도 풀렸으나 찜찜함은 가시지 않아
일찍 귀가하기로 마음먹었다.
귀가 도중 장갑 파는 노점상이 눈에 띈다. 이번 겨울에 장갑만 벌써 3번째 잃어버린 터라
버려도 아깝지 않은 장갑 하나 사려고 마음먹고 오천 원짜리 중에서 뒤적뒤적,
대부분 여성용인 듯 내 손에 맞는 것이 별로 없다.
여기도 주인장인 듯한 아저씨가 내 옆에서 지켜보더니
- 이거 한 번 써보세요- 하며 한 물건을 건네기에 껴보니 괜찮아
오천 원을 내미니 이건 만원이란다
퉁명스러운 모자 주인장에 비해 친절한? 장갑 사장님의 태도에 거금 만 원을
가볍게 투자하고 귀갓길에 오르니 더 마음이 풀리고 산뜻해진 느낌.
집에 돌아와 모자 주인장의 입장에서 오늘의 헤프닝을 다시 한번 돼 새겨 보았다.
( 아침 나절부터 기분이 별로요, 손님도 없는데 쌀쌀한 날씨에
우두커니 앉아 가게를 지키자니 신세타령이 절로 나오려는 중,
초라한 노인네가 모자를 살듯 말듯 이거저거 써보며 신경만 건드리니
나도 모르는 사이 짜증이 나 - 그냥 가쇼-한마디가 저절로 입에서 나왔다)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손님 비위 맞추려 노력하는 장갑 아저씨나,
순간적인 짜증으로 신경질을 내버린 모자 주인장이나,
또 참을성 없이 화를 내 버린 나 자신이나,
만 원이 주는 행복을 위해 잠시 서로 노력을 한 것뿐인데
장갑 아저씨는 그 만 원의 행복을 누렸지만
모자 주인장과 나는 그 만 원의 행복을 놓치고 순간적인 짜증을 냈다고 하는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언젠가 더 마음이 풀리면 도봉산 초입의 모자 주인장 가게를 다시 찾아
내가 찍어 논 만 원짜리 모자를 다시 구입하며.
혹 주인장이 나를 알아본다면 사과하고 그도 사과하며
서로 화해를 하게 된다면 우리 서로 만 원의 행복을 잠시나마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