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소스 겸용)/카페 글
목련화 ( 2 of 2 )
한스 강
2023. 7. 23. 17:53
커피숍 이층에서 내려다보이는 공원 담장 가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목련꽃이
세삼 눈에 띄는 화창한 봄날이었다는 것이 한가지 이유는 될 터지만, 뻔질나게 근처를 들락거렸어도 들어가 본 적도 없던 공원에, 그 날따라 들어서게 된 것은 약속이 펑크나 심사가 뒤틀렸기 때문이다. - 당신이야 무심코, 옆에서 같이 꽃구경하고 있던 나에게 던진 말일 터지만, “목련꽃 참 이쁘지요” 하며 첫마디 운을 뗐을 때, 속으로 은근히 반갑더라고요 - - 그래요? 아, 제가 먼저 말을 건넸었군요 - 모든 게 이런 식이였다. 한 인간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이라는 것도 참으로 이기적이여 자기 편한 데로 간혹 들추어 꺼내보기도 하지만, 어떤 기억은 저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다가 주인의 소멸과 더불어 영원히 사라지기도 한다. 나로서는 다시 열어본 적이 없어 묻혀 잊힐, 그 어떤 페이지가 그녀의 책갈피 속에서는 소중한 것으로 남아 있었던지, 짧았던 우리의 만남을 그이는 꽤 기억하는 반면, 내 기억이라곤 기껏 그녀가 끄집어낸 후에야 그런 일이 있었던가, 상대에게 미안할 정도로 빈약한 것이어, 아직 나를 기억하고, 무엇보다도 목련꽃 아래에서 나를 기다렸다니, 잊고 지내온 미안함에 때늦게나마 빚을 갚는다는 그런 심정으로 그녀가 틈틈이 뱉어내는 기억 살리기 여행에 동참, 런던에 머물던 많은 시간을 그녀와 아니 그 부부와 함께 보내게 되었다 - 나중에야 다 부질없는 한때의 허망으로 돌려 버렸지만 몇 번 만나지도 않는 당신의 얼굴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저로서도 신기해요- - 미안하지만, 우리 몇 번이나 만났죠? - - 그 공원에서 서너 번 만난 후,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그게 전부에요 - - 목련꽃 나무 아래서 당신 기다리는데 오지는 않고, 기분 참 묘하더군요. 그런데 더욱 분한 건, 잠시 나타나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그 남자를, 내가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하는 것 같아서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비참한지. - 사랑하는 방식을 모르던 가여운, 내 젊은 시절. 우리의 만남이 진정한 사랑은 아니었을지언정 늦게나마 그이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 미안해요. 제가 그땐 철이 없어서 사람 볼 줄도 모르고, 진짜 정이라는 게 무언지도 모르던 때라. - - 괜찮아요, 나 자신도 철없던 젊은 청춘이었고, 한순간에 좋은 기억으로 간직하고 미련 없이 잊은 지 오래니까요 .- -이십여 년 만에, 이곳 타국에서 당신 얼굴을 보게 되니,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그런데 상대는 나를 전혀 기억 못 하는 것 같아, 모른 척하려다가 - 이후, 견우직녀처럼 일 년에 한 번 만나길 원했던가, 목련이 활짝 피는 봄, 영국 식물 학회가 열릴 즈음, 런던으로 날아가 피터의 집에 신세 졌지만 부부 동반 영국행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지, 그녀를 더 이상 만나 볼 수 없었다. 그리 세월은 흐르니 자연스레 나의 런던행도 시들해지고 그 이에 대한 기억도 처음처럼 다시 심연 속으로 가라앉을 무렵, 우연히 온라인을 서핑하던 중 새로 개장된 식물원을 소개한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 어떤 독지가가 개인 식물원을 기증했다. 지자체에서 많은 예산을 투입, 기증된 기존의 규모보다 확장된 새로운 식물원이 최근 개장되었다. 특이한 것은 그곳에 자그마한 목련화 동산이 조성되었는데, 고인이 된 아내가 생전에 목련화를 좋아해 그녀를 추모하는 의미로 기증자의 뜻에 따라 동산이 만들어진 것이다. ) 아! 망할 놈의 목련화, 그녀는 왜 목련화를 그리 좋아했으며 목련화 동산을 남기고 떠나버렸는가? 더 이상 알게 되면 안 될 것 같아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 치부해 버리고 잊어버렸으나,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목련화를 보면 가끔은 가슴 한편이 잠시 멍하고 아련해지기도 한다. |
댓글27추천해요1
첫댓글
언제 한 번, 목련화 피는 계절에
수필방 벙개 한 번 쳐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그리 싱거운 사랑이~
한스님, 판단력 있는 분이고
글에는 편협된 생각도 없어 보이고,
뭐, 첫사랑이 잘 살면 배 아프고
못살면 가슴 아프고....
마 그렇습니다.^^
마지막 구절에
아 ! 망할놈의 목련화~ 에 가서
맘이 짠 합니다.
싱겁습니까 ㅎ
첫사랑도 아니고 사랑이라고 표현하기도
어설픈 그런 기억이지만
그래도 가슴 한 편은 아린 추억이지요.
조만간 여행방에서 뵙겠습니다.
망할놈의 목련화 ㅋ
목련화가 잘못했네요
목련은 잠시 피었다 지는 꽃이라지만
정말 아찔할 만큼 황홀하고
아름다운 꽃이에요
목련을 사랑한 그 분도
그런 순결하고도 화려하고 풍요로운 감성을 지니셨을듯 하네요
한스님 글 재미있어요 ^^
우연이 만나 우연히 헤어졌나요. ㅎ
가끔씩 꺼내보는 추억담이라
생각하시면 되지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늘은 칼리파 부인을 모시고 오셨군요.
모르는 부인이니 많이 듣고 공부해 보겠습니다.
예감이 틀려야 하는데 ㅡㅜㅜ
슈베르트의 '죽음과 The 처녀'가 그렇고
백목련의 꽃말과 전설이 예시하더니
어쩔꺼나 ㅡ어쩔꺼시여.ㅡ
늦게나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목련 꽃말이 그렇습니까.
저는 그것도 몰랐습니다. ㅎ
항상 따뜻한 댓글 감사 드리며 건강하세요.
그 식물학회 가,
영국 아일랜드 식물학회(BSBI)
인가요 ?
영국은 정원 가꾸기가 생활화 되어 그런지
관련된 협회,토론회 등이 수없이 존재 하더군요.
아일랜드 식물학회는 아닙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목련화와 관련한 추억이로군요.
애틋한 이야기 잘 읽고 갑니다. ^^~
수필방에는 어울리지 않는 글 같아
글 쓰기 주저 했었는데 잘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젊은 시절에 몇번 데이트를 했던 여인을 수십년 후에 만났는데
한번 만난걸루 끝나고 여인은 죽음을 맞이 했다니 안타깝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충성
그렇고 그런 스토리 읽어 주시니
감사 하지요. ㅎ
항상 건강하세요.
그 여자분의 입장이 되어 그 심정을 헤아려 보고싶네요.
겨우내 보송보송한 외피를 입고있다가 봄기운 돌면 화들짝 피어났다 너무 빨리 지는, 부드러운 꽃 잎이 황갈색으로 변하며 지는 모습이 애처로운 목련.
어머니 정원의 백목련과 미국 첫집 대문 앞 자목련이 생각나는 글입니다.
그 여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신다니
그녀는 저를 잠시나마 사랑했던 건 아닌지?
저도 뜨끔하고 더 애잔한 생각도 드네요.
항상 따뜻한 댓글 감사 드립니다.
건필 유지하시고 행복하세요.
마음이 찡하네요
한스님 보다는 그 여자분이 더
오래 그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기억의 편집.
저도 목련꽃을 보면 대학 4학년때
기말고사를 보고나서
운동장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던 목련꽃이
생각나곤 합니다
마지막 시험의 안타까움 보다는 하얀 목련꽃의
고운 기억만 남아 있네요
아무래도 그런가 봅니다.
지금 먼 곳에서 평안하게 잘 지내려니
생각하지만 마음이 좀 그렇네요.
댓글 감사 드리며 행복하세요.
오랜 한평생을 살아 가다보면
이런 사랑에 이르지 못했어도 기억되는
이성이 있을 것입니다.
아름답고 마음속 아련함도 있지요.
청소년 시절에 많이 읽었던 문학작품 을 다시
보는듯 합니다.
잘 지내시죠,
어줍지 않은 글에 따뜻한 댓글
달아 주시어 고맙습니다.
무더위 속 고향 땅에서 즐겁게 잘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