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소스 겸용)/카페 글
우리 대장 ( 2 of 2 )
한스 강
2023. 9. 14. 16:09
당시 오십 초반이던 대장은
어쩌다 인생 후반 공원 실업자 대장 노릇을 하게 되었는지 자세한 내력은 모르겠지만 와세다 대학 출신이라는 소문에 걸맞게 외모, 매너도 준수한 사람으로 비록 호주머니에 동전 한 푼도 없는 처지지만 자기 자존심을 지키고 살아가는 사람이어서 알바가 없는 토요일 오후에 공원에 들러 대장과 그 졸개들과 어우러지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토요일 내 오후 일과가 되어 버렸다 지방에서 올라온 내 또래는 친척 집에 기대 살고 있었고 나머지 멤버들도 각자 나름대로 거주할 곳이 있었지만 대장은 고향이 진주라는 것만 알지 와이프, 자식에 대한 본인 언급도 없어 그야말로 하늘 아래 홀로 된 상태 첫날 내 막걸릿값을 지불하고 나가버린 것도 나로서는 황송할 지경으로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공원에서 퇴근하면 부대장 격인 최 씨 집에 가 잠을 자는 형편이니 인생 막다른 골목에 서 있는 처지이건만 자존심 하나는 대단해 남에게 어려운 내색을 안 하고 버티고 있는 그가 안쓰러울 지경. 당시 다행히 내가 알바 하는 통에 주일에 한 번 공원을 들르면 큰돈은 못 쓰지만 우리 일행 커피값 막걸릿값은 당연히 내 몫이여 다들 없는 처지인 멤버들은 토요일은 나를 기다리고 환영하는? 분위기여서 나도 순박한 그들이 좋아 한동안 어울려 지냈다. 공원에 모이는 그룹들도 천차만별, 쓰리꾼, 사기꾼, 모르는 이 결혼식에 떼 지어 몰려가 하객을 가장, 점심 축내고 오는 부류들이며 말 그대로 천태만상, 인간극장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곳, 구경하는 재미가 나로서는 쏠쏠했다. 그렇게 그들과 어울려 한 일 년 가까이 지내다 보니 물주 노릇? 하기에도, 공원 인간극장 구경도 시들해졌지만 무엇보다 병역 문제 해결을 해야 해 공원 출입이 뜸하게 되니 자연스레 우리 멤버와의 거리는 서서히 멀어져 갔다. 중간에 내 소식이 궁금했던 지 대장한테 전화가 몇 번 왔으나 시큰둥한 내 응답에 실망했는지, 섭섭한지 풀이 죽은 듯한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해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한동안 공원 출입을 안 하고 70년도 말경 오랜만에 공원에 들렀더니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몰려 있으나 우리 멤버들 얼굴은 보이지 않아 궁금해 조금 더 어슬렁거리다 보니 얼굴이 익은 사내가 보여 혹시 대장 소식 아느냐 물어보았다. 대장은 공원에 들르는 모 종교집단 여신도의 눈에 들었는지 그녀를 따라간 지 몇 년 됐다고. 일단 숙식 해결이 되었고 우리 대장 인물이 훤칠하니 누군지 몰라도 그녀가 대장 죽을 때 까지 잘 모시리라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지금 대장이 살아 있으면 백수가 되니 벌써 이 세상 등지고 어디에 누워 있을 터지만 마지막으로 만난 그녀와 말년을 평안하게 보내다 생을 마감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가 내 소식 궁금해 전화를 몇 번 한 것이 우리의 마지막 대화이건만 왜 조금 더 따뜻하게 못 대해주었는지 후회된다. 대장, 푹 쉬세요. 여러 가지로 그간 고마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