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수많은 우연과 마주침이다. 말 그대로 우연 되어 내 인생에 하등 영향을 끼치지 않고 자연스레 옆을 스쳐 가는 것도 있지만 어떤 우연은 필연 되어 한 개인의 인생을 송두리 흔들어 놀 수도 있다
부모님이 얻어준 조그마한 아파트에서 신혼살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던, 꽤 거슬러 올라가는 시절, 본가가 지척 이어 문안 인사차 들리던 어느 날, 보통 여자들보다 한 뼘은 크고 얼굴 치장에도 뒤지지 않아 눈이 높아 노처녀가 됐다는 소리 듣던 손위 친척 누이가 헌한 키, 영화배우 치는 서구적인 얼굴을 가진, 누이에 겉 맞는 예비 신랑감 옆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래의 신혼부부가 돌아간 후에 부모님은 신랑 잘생겼다 좋아하시며 어떠냐 물으시기에 "인상 좋네요" 간단하게 대답은 했지만, 내심 혼란스러워 어지러울 지경
혹자는 각자 생의 한 모퉁이에 비밀스러운 공간을 마련하고 서로 인연을 맺고 살아가기도 한다. 그 공간에서 우연히 알게 된 이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마주치는 경우 서로의 비밀을 지켜주기 위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야 순리일 터이다.
그날 본가에서 첫인사를 나누게 된, 누이의 신랑감은, 그는 나를 모를지 몰라도 나에게는 너무나도 낯익은 그 비밀공간에서 마주친 사람이었다. 나야 기혼자가 되었지만, 그는 예비 신랑의 처지이니 반대해야 할 터지 내가 문제로 삼으면 무작정 반대가 아닌 이유를 대야 하니, 꼬치꼬치 이야기가 길어지다가는 내 처지까지 곤란해질 수 있어 ㅎ 내 자신과 누이와의 사이에서 어찌할꼬, 끙끙거리며 날짜만 보내고 있다가 결국은 결혼식장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고 말았다
.신랑과 떠들썩거리며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일행 중 그들은 나를 몰라보나 나에게는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띄니 역겨워지는 심사를 몰래 감추고, 신혼부부의 행복을 빌고 또 빌며 혼자만의 비밀로 묻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내 염려대로 친척 누이는 짧은 결혼 생활을 마감하고 부모가 마련해 준 자그마한 집에 홀로 들어앉아 거의 외출을 삼가며 무엇이 그녀를 아프게 만들었는지 오랜 세월 아직도 홀몸으로 외롭게 늙어가고 있다.
책임질 수 없는 결혼을 택하고 한 여자를 외롭게 만든 그 미남자는 들리는 풍문에 미국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하니 지극히 이기적인, 누이 생각하면 한없이 미워지기도 하는. 그 남자를 떠올리면... 누이의 인생에서 그와 마주치는 우연이 없었더라면... 아니 내가 어떤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그 결혼을 막았더라면.... 누이가 저 지경은 안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회한인지, 가슴 한편이 싸해지기는 하나,
인생은 흐르는 강물이던가, 구비구비 흐르는 도중 마주치는 숫한 인연, 우연들, 나 자신도, 누이도 ,그 미남자도.. 저 거대한 강물속에 던져져.. 우리의 의지로는 거역할 수 없는 구비 따라 생이 끝나는 날까지 흘러가야 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