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하우스
약도상 위치는 전철역에서 가까우나 입구 골목 찾기가 만만치 않아
조금 헤매다 보니 음식점이 대다수인 골목 안에 어우러지지 않은 간판이 눈에 띈다.
‘클래식 음악 감상실 베토벤 하우스’
서울 변두리 먹자골목, 허름한 빌딩 3층에 위치한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라니,
이곳까지 찾아와 고전 음악을 들을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내 찾아간 시각이 오후 2시경.
커피 주문 후 자리에 앉으니 지금 영업 시작인가? 그제야 실내조명을 약간 어둡게 하고
창 블라인드를 내리는 것을 보니 내 염려 혹은 예상대로 내가 오늘의 첫 손님인가 보다.
‘듣고 싶은 음악 있으신지.?’
‘저는 실내음악을 선호하는데’ ‘ 아, 그럼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어때요’
머뭇거리는 내 응답에 주인장이 모차르트를 추천한다.
‘모차르트보다,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그거로 하지요‘
짧은 시간 안에 첫 상면치곤 많은 대화를 나눈 셈이다.
한쪽 벽에는 베토벤을 위시 작곡자들의 사진.
나머지 공간은 주인장이 그간 모아논 LP 판, CD 로 가득 채워져 있는 넓은 실내.
의자와 소파들이 듬성듬성 놓여있고 정면에 대형 스피커,
그리고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어 음악감상실 면모는 갖추어져 있다.
50 중반은 되어 보이는 지적으로 생긴 주인장은 어찌하다
이런 곳에 음악 감상실을 열 생각을 했을까?
자기 빌딩이 아니라면 적자는 눈에 보이듯 뻔할 텐데.
얼마 만에 소위 음악 감상실에 와보는지,
고교시절 열심히 드나들던 ‘ 르네상스’를 떠올리며 슈베르트에 잠시 빠져 들었다.
주인장은 한쪽 구석을 사무실로 사용하는 듯
의자에 앉아 일을 보다 꾸벅꾸벅 졸고 있고
손님인 나도 스크린에 눈을 고정하고 음악을 듣는 건지,
졸고 있는 건지 애매모호한 몸짓으로
넓은 공간을 늙수그레한 두 사내가 독차지하며
무표정한 화면을 연출하고 있으니
‘고도를 기다리며’ 혹은 ‘어느 셀러리맨의 죽음’ 의 한 장면이던가?
실내의 화사한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츱츱한 고요 속에 잠겨
회색빛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이건 평화롭고 한가한 오후 시간인가.
아니면 권태롭고 무료하기 조차한 비생산적인 오후 나절인가.
주인장이 임의대로 고른 다음 곡은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전곡을 오랜만에 듣다 보니 얼추 두 시간 정도가 흘렀나 보다.
이제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
저녁나절도 내 예상대로라면 손님이 없을 듯하니
주인장 홀로 놔두고 가기도 멋쩍은 것 같아
배웅하는 그에게 한마디 던졌다.
‘혹, 이 빌딩 주인이신지?’ “아닙니다’ ‘공간이 꽤 넓던데’
‘예, 몹시 어려워요’ ‘ 오늘 고마웠습니다. 다음에 또 오지요’
더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가면 그의 속내, 경영상 어려움 등을
그의 입을 통해 듣게 될 것 같아 귀갓길에 올랐다.
감상실 소개 글에 주인장이 고전 음악의 본산인 유럽 여행을
자주 가는 탓에 문을 여는지 확인하고 가는 편이 낫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으니 자기 먹고 사는 것은 지장이 없으나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니 경영의 적자를 메꾸어 나가기에는
애로사항이 많은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잠시 들었다.
나는 주인장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나
나처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에게 특별한 공간을
제공해 주는 사람이니 나로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버티기가 힘들 터인데
언제까지 그가 이 음악 감상실을 운영하게 될지,
부디 기왕이면 오랜 기간 이곳이 존재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으며
퇴근 후 한 잔 하려는 사람들이 서서히 모여드는 도시의 변두리
먹자골목을 빠져나와, 전철역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