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외길을 꾸준히 가는 이도 많으나, 나처럼 휘청이다 속절없는 세월만 보내버린 인생도 있다 . 중2때 이던가, 모교 땅은 참 넓었다. 오디가 시커멓게 익어가는 나무 그늘 밑에서 헤르만 헤세의 문고판 소설을 옆에 두고 아! 인생은 일곱 빛깔 무지개, 흘러가는 구름 쳐다보며 나름대로 꿈많던 시절, 그 고요함의 정적을 깨고 말을 걸던 다른 반 녀석. 우리가 처음 친구가 되던 순간이었다.
당시 고교 입시가 있던 시절, 동계 진학률이 80% 였던가? 나보다 훨씬 성적이 우수하던 친구는 실패했지만, 밑바닥에서 세어 나가야 훨씬 편한 성적인 나는 세인들의 경악? 속에 당당히 합격, 서로 다른 고교를 다니게 되었지만 우리들의 우정은 변함없었다.
고교 졸업 이후, 여차여차 해서 학번, 학과는 다르지만 같은 대학에 다니게 되던 어느 날, 작고하신 S 대 불문과 김 붕구 교수님의 불문학 개론을 친구가 넘겨주며 읽어보라 권하며, 자기도 꽤 흥미를 갖고 있다고,
개론에 언급된 작가들, 랭보, 보들레르, 콕토, 푸로스트, 앙드레 지드, 기라성 같은 수많은 프랑스 작가들의 면면이 너무 흥미롭고 다채로워 순식간에 다 읽어 내려갔고 더 알고 싶은 욕망이 불현듯 생겨, 불문학을 전공하기로 결정을 내려 버렸다.
당시 제2외국어로 독어를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라 우선 급한 대로 새롭게 불어를 독학하며 타 전공이 대학원에 진학하려면 소정의 해당 학점이 요구되어, 내 전공 이외에 불문학 과목을 추가 신청해 수업을 듣기 시작한 것이 3학년 때이다.
졸업 시 까지 한 일 년 여간 불어 공부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은 불문과 대학원 진학이 아닌, 심심해서 집어넣은 입사원서- 합격- 부모님 특히 아버님의 간곡한 권유로 대학 졸업 후 취업의 길로.
넥타이 매고, 봉급 받고, 퇴근 후 술 마시고, 그럭저럭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다는, 소위 화이트칼라의 안일함, 그 함정에 빠진 탓인가? 십여 년의 세월을 무의미하게 훌쩍 보내버린 것이 바로 나요, 친구는 불문학은 아니지만 외길, 소위 학문의 길을 꾸준히 걸어갔다.
당시 아버님의 권유를 뿌리치고 대학원에 진학해, 불문학을 전공했더라면 내 인생이 달라졌을까?
인생 살아가며 마주치게 되는 우연 속에, 선택과 결정을 요구하는 크고 작은 수많은 상황들. 살아가며 누구나 선택의 갈림길에 서기 마련이다. 어느 광고 카피처럼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지우지 함은 더 세월이 흐른 후에야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 우연 속의 선택이 본인에게 불리한, 달갑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경우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기는 하나 이미 엎질러진 물, 후회하면 무얼 하리.
그런 결과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후회하기보다는, 우선 현실을 인정하고 순응하는 일이 첫째요 다음 선택이나 결정 시에는 더 신중하고 현명하게 대처해야겠다고 마음먹는 일이 중요하지 않겠나. 남은 시간, 살아가며 선택을 해야만 하는 순간이 또 얼마나 오게 될지 모르지만, 시행착오가 아닌 후회 없는 선택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 와서 내 지나간 세월을 후회해 보았자 소용없는 일이기에, 후회하지는 않더라도 돌이켜보면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내 젊은 시절, 나는 무슨 일에 종사하며 어떻게 살아가야갰다는 소위 뚜렷한 직업의식이 없었기에 평생 학문의 길을 걸은 내 친구처럼, 외길을 걸어간 사람들을 보면 부럽고 존경스럽기조차 하다.
비록 그 일이 소위 막노동이건, 고상한? 대힉교수건, 어떤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묵묵히 자기 소임을 다하며 평생 외길을 걸은 사람들에 비해 나는 휘청거리는 삶을 살았기에 그들이 부러운 것이다.
어떤 일이든, 어떤 선택을 하던, 자기 천직으로 알고 한평생 묵묵히 걸어간 삶은 존경받아 마땅하고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인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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