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bert, Trio No. 2, Op. 100, Andante con moto)
개X도 약에 쓸려면 없다더니 지금 내 처지가 딱 그쪽이다. 귀국을 앞두고 공항 수화물 규정 23kg에 맞추려니 세탁기, 냉장고, 전축 등등 부피가 큰 것은 물론 집 전체에 널려있는 모든 물건을 버려야 해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주변 도와 줄 사람도 마땅히 없어 혼자 힘으로는 엄두가 안 나 경비가 들더라도 전문업체에 용역을 맡겼으나 나 혼자 마무리할 일도 많아, 버리고 버려도 끝이 없어 몸과 정신이 지칠 지경이다. 그간 이곳에 살면서 이사를 서너 번은 다녔으나, 살던 곳을 완전히 빈곳으로 만든다는 것이 새로 살 집을 얻어놓고 이사를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또 다른 중노동이라는 것을 이번에 피부로 느끼는 중이다. 혼자 사는 이의 집이 이럴진대 대가족이 사는 집은 어떠할까? 여기는 한국처럼 분리수거가 철저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들어가지 않는 큰 물건을 버릴 수 있는 스테이션(?)이 있어 자동차로 실어 날라 마음껏 버릴 수가 있다. 한국처럼 분리수거 철저하고 부피가 큰 물건은 개인이 마음대로 버릴 수가 없는 환경이면 어쩔뻔 했을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며 위안하고 있다. 여동생을 한국으로 보내고 9월 한 달은 행정 처리, 틈틈이 물건 버리기로 세월을 보내다 보니 불안하다 할까, 마음이 안정이 안 되어 카페댓글도 못 쓰고 있는 처지인데 오늘 오전 빈 박스 버리고 난 후, 모처럼 컴 앞에 앉아 넋두리를 펼 마음이 생긴 걸 보니, 대충 귀국 마무리가 되어 가는 모양인가? ㅎ 28일 업자가 와, 말 그대로 빈집을 만들 계획이니 내일은 냉동, 냉장고 코드 빼고 식품 정리해야 한다. 김, 미역, 고추장, 간장, 젓갈 등등 그간 아껴 먹던 한국 식품들이건만 조리 해 먹을 마음, 시간도 없으니 주변 한국식당에 기부? 예정이나 사용한 것이 반 이상이라 안받는다 하면 쓰레기통 신세가 될 것이다. 언젠가 이곳을 정리하고 영구 귀국을 하는 날, 온갖 감회가 서려 공항에서 눈물이 날 것 같은 상상해 본 적이 있는데, 그간 신경 쓸 일이 많은 탓인지 지금 기분 같아서는 실감도 안 나고 눈물은커녕 허겁지겁 귀국 짐 보따리 싸 들고 정신없이 이 나라를 떠날 것 같은 예감이다. ㅎ 여행은 떠나기 전이 더 아름답다 했던가, 꿈꾸고, 상상하고, 기다리는 시간은 항상 애잔하고 가슴 저린다. 그러나 그 시간이 막상 닥치면 꿈꾸고 상상하던 것들이 내 앞을 짓누르는 현실이 되어 그 감미로움은 잠시일망정 빛을 잃고 만다. 내 바라던 조국 한국에 도착하고, 그리고 또 다시 세월이 흐른 후, 어느 조용하고 평안한 시간, 불현듯 이 나라를 떠나던 기억을 반추하게 되면 아마 그때는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실컷 좋건 만 가지 감회가 서린 나에게는 제2의 조국인 이 땅이 아니겠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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