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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딸네집에 다녀와서

한스 강 2007. 11. 25. 07:01
딸네 집에 다녀와서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고 나니 공연히 마음이 쓸쓸하고 허전 했다. 아들내외는 한 지붕아래 살고 있어도 차례를 지내고 아침을 먹고는 두 딸을 대리고 아래층 저의 집으로 갔다. 큰딸은 경기도 포천에,
작은딸은 미국에 살고 있으니 보고 싶어도 볼 수없는 것이 흠이다.

포천에 사는 큰딸이 추석 지나면 한번 다녀가라고 하기도 했지만, 문득 딸이 보고 싶어서 아내와 같이 딸네 집으로 향했다. 믿거나 말거나 요즘 이런 말이 유행어로 떠다닌다. “딸 둘, 아들 하나는 금메달.” “딸 둘은 은메달.” “아들 둘은 목메달” 이라고 하는 것이 웃고만 넘어갈 말이 아닌듯하다

나는 금메달 자식을 둔 부모임에 틀림없다. 그것도 자식 하기 나름이겠지만, 우리 자식들이 금메달감 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큰딸은 건강이 안 좋아서 공기 맑은 포천의 청산靑山 아래 허름한 집을 마련해서 살고 있다. 나는 다른 자식보다 큰딸에 대한 남다른 정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엄마 젖을 떼고부터 사춘기 소녀시절, 여교를 졸업 할 때까지 할머니 할아버지 품에서 오직 맹목적인 사랑만 받고 크면서, 부모 정을 모르고 살았다.

대학도 못가고 부모가 반대하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고집 했다. 결혼 후 친정으로부터 외면당하며 가난과 싸우면서 살아 왔다. 그렇게 힘든 결혼 생활을 하는중에 신부전증으로 신장의 기능상실로 투석 해 오다가 합병증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아비의 신장을 이식 받아 지금 14년째 덤으로 사는 인생이다. 수술 이후 5년은 건강하게 지냈는데 3년 전부터 당뇨가 심해서 또 고통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러기에 더 마음이가는 자식이다. 나는 늘 아비보다 먼저 가지 말라고 농 삼아 말 한다. 딸은 약물 중독인가 몸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딸의 아픔을 생각하면 모두 내 잘못 같다는 생각에 가슴이 저리다 . 다른 자식보다 더 많은 관심으로 바라보고 경제적 도움을 주느라고 주고 있지만, 늘 병원비 충당하느라 모자라는 생활비 때문에 쩔쩔매고 있다.
사위와 딸이 포천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꼬불꼬불 논과 밭이 이어지는 동네 한가운대를 지나는 좁은 도로를 사위는 말없이 운전하고 간다. 늘 보아도 과묵한 사위는 오늘도 말이 없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추석 전 새로 이사한 집이다.

마을 입구부터 황금들판에는 벼이삭이 누렇게 고개를 숙이고 콩, 수수, 고추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오랜만에 보는 농촌 풍경은 마치 강원도 내 고향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마을 회관을 지나서 산 밑에 밤나무가 우거진 허름한 집 앞에 도착했다. “여깁니다." 50년이 넘은 집인데 그레도 살기는 편리하고 좋습니다.” 하고 사위가 무거운 입을연다.

대문 앞에 도착하니 개가 집안에서 심하게 짖는다. 잠시 나갔다 오는 주인을 반기는 건지 낯 선 우리가 오니 경계를 하는 건지 대문을 열고 들어서니 발바리종류의 개 세마리가 동내가 떠나도록 악을 쓰고 짖어 댄다.
그런데 마당에는 밤송이와 알밤이 여기저기 일부로 밤을 갔다 뿌려 놓은 것같이 깔렸다. 내가 강원도 산골에서 살았을 적에도 보지 못한 처음 보는 풍경이다. 우리는 쉬지도 않고 비닐봉지와 바구니에다 마치 경쟁이나 하듯 신나게 밤을 주워담기 시작했다. 앞마당과 뒷마당에서 주은 밤이 전부 한말은 되었다.

밤을 줍고 있을 동안에도 계속 마당으로 밤이 떨어져 굴러 가고 있다. 밤나무를 올려다보니 50년도 넘었다는 커다란 나무 네구루가 집안을 향하여 굽어있었고 아직도 파란 밤송이가 총총히 달려있다. 이 가을날 풍성한 밤송이들을 보니 부자가된 기분이다,
딸이 정성을 다해 준비해준 저녁을 맛있게 먹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가 거처할 방으로 왔다. 보름달이 밤나무 사이로 비스듬히 떠오른다. 집 앞 가로등이 아니면 더 운치가 좋았을 것을.. 가로등 때문에 달빛인지 불빛인지 분간이 안 된다.

큰딸은 어느 자식 보다 정이 많고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가진 것도 없으 면서도 궁상 떨지 않고 살지만, 아비가 자청해서 조금 도와주면 고마워하고 감사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비록 새집은 아니지만, 공기 맑고 풍요로운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곳에서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해 주었으면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뚜다닥 뚝” 지붕위에서 밤 떨어지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딸이 잠자기 전에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면 귀신이거나 도둑인 드는 것 같아 무척 무서웠스리라. 그러나 공기 맑은 자연의 품속이라 그런지 깊고 깊은 단잠을 잣다.




출처 : 아름다운 60대
글쓴이 : 김현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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