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것은 응당 그리워 지느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모든 것은 순간적으로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응당 그리워 지느니.
70년대의 한국 이발소 거울 옆에 흔히 걸려있던
러시아의 시인 푸슈킨(Alexander Pushkin)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의 일부다.
그 때는 첫 소절이 마음에 와 닿더니
지금은 마지막 소절이 가슴을 저민다.
그리움이란 게 무얼까?
정말 고통스러웠던 일들까지도 그리운 것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 고통이 아니라 그 시절 그 때가 그리운 것이다.
그리움이란 상실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그리움의 대상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장소나 세월이나 또는 어떤 에피소드도 된다.
귀소본능(歸巢本能)은 동물들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내게 역마살(驛馬殺)이 있는지 77년에 한국을 떠났으니
남들은 앓지 않아도 되는 향수병마저 간간이 찾아 든다.
미국은 주말부터 월요일까지 노동절 연휴라서 동네가 조용하다.
옛날 생각에 책을 들고 Nockamixon State Park 엘 갔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주 데리고 오던 곳이다.
옛날 그 피크닉 테이블에서 책을 펴 들었으나 몇 페이지 읽다가 덮어야 했다.
옆 테이블에 옛날 우리 애들 만한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를 보면서
저 부부도 언젠가는 나처럼 오늘을 추억 하리라는 상념 때문이다.
세상엔 변해서 슬픈 것이 있고, 변치 않아서 슬픈것이 있다.
피어 오른 뭉게구름과 호수의 푸른물이 옛날과 너무도 같아서
옛날이 더 그리웠던 일요일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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