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소스 겸용)/카페 글

나는 적당히 불행한 사람이 더 좋다.

한스 강 2021. 6. 21. 22:26

코미디를 보는 순간은 재미있을지 모르나 빨리 잊게 되지만, 슬픈 드라마를 본 후에는 그 여운이 오래 가듯이,

한 인간이 다른 이를 만나 서로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면 잠시 부럽다는 생각은 들지 몰라도 그리 큰 감흥은 없지만,

사랑하는 이를 만났으나 주인공이 불치의 병에 걸렸다면, 호기심이 발동되고 타인의 일 같지 않게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감정 대응일 것이다.

 

행복, 불행, 비극, 희극 등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단어들은 각 단어에 함축된 의미가 워낙 다양하고 복잡해

그 진정한 의미를 논의한다는 자체가 힘든 일이지만, 비극에 아름다울 미 자를 첨가, 비극 미라면 그럴싸하게 들리나

행복 미, 희극 미 하면 어색해진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이 망할 놈의 비극 혹은 불행이라는 것이 약방의 감초처럼 첨가되어야 사람들은 더 공감하고

감동을 하게 되는가? 어처구니없고 허망하기도 하나 맞는 말 같기도 하다.

 

차이콥스키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교향곡 비창을  사랑하는 젊은 청년인  Bob  에게 헌정했다.

 

외부적으로 노출되면 힘들어지는 당시의 시대 상황이기에, 본인의 성 정체성을 감추며 평생을 마음고생 하며,

고독하게 살다간 그의 심정을 대변했는지, 비창뿐만 아니고 바이올린 협주곡 등 많은 그의 음악 속에는

비장감, 슬픔이 물씬 녹아있어, 한 인간의 불행한 삶이 아름다운 비극 미로 탄생, 불멸의 생존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면 너무 이기적이요 역설적인 표현만은 아닐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 등 수많은 천재들의 불행한 삶이 그랬듯이.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요 행복한 일이나 동시에 애틋함, 아픔을 동반하기도 한다.

사랑이 한없이 행복한 일만은 아닌 것처럼 우리의 삶도,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 천국처럼 행복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무미건조할 지도 모른다.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남부러운 것 없는 사람도 보기 좋지만,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순수성을 잃지 않고

나름으로 열심히 살아온, 그런 사람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싸해지는, 비극 미가 약간은 동반된 그런 인생에

더 공감이 가고 정이 가는 것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적당히 불행한 사람이 더 좋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