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소스 겸용)/카페 글

착한 사람이 복도 받고 오래 사는 세상

한스 강 2021. 9. 19. 23:20
오래전의 일입니다.


영국에 사는 선배가 너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인간성이 아주 괜찮은 친구가 하나 있다는 말을 하더군요.
평소 선배는 남의 칭찬에 무척 인색한 편이기에 호기심이 잔뜩 생겼지요.


이후 영국에 갈 기회가 있어 나보다 10여 년 년하인 그 친구를 만나보니 선배 말 그대로
그는 천사 같은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화가가 꿈인 그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림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주변 환경이 여의치 않아 영국에서 악전고투 하고 있었습니다.


기본 거주 비자 문제, 런던의 유명 미술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비싼 등록금 문제 등으로 고민을 거듭하다,
믿고 따르게 된 저에게 더는 못 버티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음을 토로하며 안타까워하더군요.
그간 알게 된 그의 한국 사정도 별로 좋은 편은 아니어서 한국에 가더라도 그가 원하는 그림 그리며 살 수 있는
여건이 안되기에 저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4-5년간의 치열했던 영국 생활을 마감하고 그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  네덜란드에서 내 몸 하나 겨우 건사하고 사는
형편인 저로서도 막막한 심정이나, 밥만 먹고 살아도 좋으니 좋아하는 그림 그리며  평생 살고 싶은, 큰 욕심  없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름 모색해 보았지요.


이후 자세한 내용은 언급할 필요도 없고 밝힐 수도 없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가 네덜란드에 오게 된 것이 2003년도.
우리의 네덜란드 인연은 그리 다시 시작되었지요.


네덜란드 남쪽, 벨기에가 더 가까운, 우리로 치면 경상남도에 자리 잡은 그는 원하는 데로 돈은 없지만, 밥은 굶지 않으며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살게 되었고 여건상, 거리상, 주로 그가 바람도 쐴 겸 몇 개월에 한 번 정도 내 사는 암스테르담을
방문하며 우리의 인연은 계속 되었답니다.


단조롭지만 평화스럽던 그의 네덜란드에서의 일상에 변화가 온 건 2015년 어느 날.
자꾸 기침이 나고 오래 지속하기에 일 차 홈닥터, 종합병원 검진 후 밝혀진 병명은 폐암 3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저에게 전하더군요. 네덜란드에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저였기에 전화로 혹은 우리 집을 방문해 투병 과정을 그가 말을 해주어 저도 상세한 내용을 알게 된바,
암이 여러 곳에 분포 수술이 불가하고 항암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작년 제가 한국 방문 중인 10월에 그의 운명 소식을 접하게 된바, 5년여를 암과 씨름하더니 견디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어, 마지막 가는 그의 외로운  길도 마중을 못 가고 말았네요.     
  
그 후배 생각을 하면 인간의 성정은 각자 가지고 태어나고, 후천적으론 기본 성정은 못 바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비록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타고난 심성이 너무 고와 그 많은 시련 속에서도 맑고 곱게, 주변 환경,
사회에 대해 원망 하나 없이 정말 열심히 살았던 친구임을 제가 잘 알기에 그의 짧은 생이 더 아쉽습니다.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복도 많이 받고, 오래 살아야 할 텐데 세상은 꼭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신앙심 깊은 분들이야 그 고운 심성을 더 높은 곳, 하늘에서 쓰기 위해 데려 깄다 말씀들을 하실지 몰라도
저는 그냥 아쉽기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모순덩어리인지 우리의 삶에 정의는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도 하는군요.


코로나 시즌이여 가족이 한국에서 오지도 못하고 홀로 외롭게 생을 마감한 후배를 기리는 뜻도 있을 터
10월에 한국에 가면 인천에 그의 여동생과 누이가 살고 있어 만나볼 생각입니다.
언젠가 후배와 한국에 가 만나본 적이 있는데 저한테도 참 잘해주던 아주 착한 사람들이랍니다.


착한 사람들이 복도 많이 받으며 오래 사는 그런 세상은 언제나 오게 될까요.
그런 세상은 없고 세월은 그냥 우리의 뜻과는 다르게도 흘러가는 것, 그런 게 인생인가 봅니다.
저작자 표시컨텐츠변경비영리
댓글23추천해요2
스크랩0
댓글
    •  순수 수피아첫댓글 21.09.14 04:47답글기능 더보기
    • 일찌감치 잠이 깨어 한스님 글을 읽으며 한편으로 몹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고인이 쉽지않은 삶을 살아온 탓에 많은 좌절감을 느끼며 살았을 터이고 그런 어려운 여건이 목숨까지 단축시킨 병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힘든 삶을 살았던 고인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셨던 한스님 따뜻한 인품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 보며 추천하고 갑니다. ^^~
    •  한스21.09.14 16:25답글기능 더보기
    • 힘들지만 나름 행복하게 살고 갔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았으니까요.
      고운 댓글 감사 드립니다.항상 건강하세요.
    •  단풍들것네21.09.14 05:28답글기능 더보기
    •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우리의 뜻과는 다르게 흘러가는게 인생이라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언젠가 한스님 글에서 적당히 불행한 사람이 좋다고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어렵게 살면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
      그런 맑은 사람들이 복도 많이 받으며 오래 사는 그런 세상은
      그냥 우리의 바램이겠지요
      더 값진곳에서 사용하기 위해 하늘에서 데려갔다는 말처럼
      공허한 말이 어디 있을까요
    •  한스21.09.14 16:27답글기능 더보기
    • 일을 하시니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되셨는지요.
      착한 사람이 복도 많이 받는 경우도 있으려니
      생각하렵니다.착하게 혹은 못되게 사는 것도
      저는 타 타고난 성정이라 생각합니다. ㅎ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태평성대21.09.14 06:33답글기능 더보기
    • 그분은 가족은 있었는지 가족은 무얼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일찍 돌아가시는분들은 우리를 슬프게합니다

      게다가 착한분이었다니 더욱더 안타깝습니다

      착한 사람이 복도 많이 받고 오래사는 세상이 이상적인 세상입니다만

      그런세상이 쉽게 오지 않는다는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이세상 착하게 살아가도록 노력합시다

      충성 우하하하하하
    •  한스21.09.14 16:29답글기능 더보기
    • 본인은 홀몸으로 살다 갔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타국땅에 뿌려졌지요.
      외롭지만 나름 열심히 살았기에
      사는 동안은 행복했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항상 즐겁고 건강하세요.
    •  콩꽃21.09.14 09:07답글기능 더보기

    • 제목을 보고선 아주 아름답게 끝나는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이국땅에서,
      가족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그분의 생이
      너무 극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들의 생각이고
      자신은 의연하게 세상을 떠났을지 몰라요.
      평소와 같이 착한 맘으로
      욕심없는 마음이니까
      찾아가는 저 세상도 마음처럼 찾아가리라
      생각합니다.

      한스님, 한국오실 준비에 마음이 바쁘시죠.
      많이 기다려 봅니다.
      한스님을 기다리는 수필방 여러분이 계셔요.



    •  한스21.09.14 16:31답글기능 더보기
    • 따뜻하신 댓글의 내용처럼 맞습니다.
      그는 열심히 살았고 누구보다 착하게
      살았기에 그의 생은 행복했을 것입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보라리스21.09.14 09:29답글기능 더보기
    • 혹시?
      제가 생각한 나쁜 방향이 아니길 바라면서 조마조마 읽다가
      끝내는 가슴아픈 사연에
      마음이 시리네요.

      위에 콩꽃님 말씀처럼
      저세상에서 편히 계실거라
      믿어봅니다.

      제 글의 댓글만 보고
      한스님 글 기다린다 했는데
      이렇게 와계셨네요.^^*
    •  한스21.09.14 16:33답글기능 더보기
    • 열심히 살았으니 마음은 행복하고 복도 많이 받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행복은 아니니까요.
      댓글 감사 드리며 고운 글 , 항상 건필하세요
    •  헤도네21.09.14 10:55답글기능 더보기
    • 제목을 보면서
      그런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스님... 하면서도

      착해서 복받은 사람의 이야기인줄 알고
      내내 읽으면서 이 청년이 같은 마음씨의 독지가를
      만나나보다...

      아... 하고 싶은 말도 생각나는 말도 없습니다....
    •  한스21.09.14 16:35답글기능 더보기
    • 그래도 나름 열심히 착하게 살았으니
      어떤면에서는 행복한 생을 살고 갔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댓글 감사 드리며 행복하세요.
    •  은순이21.09.14 11:43답글기능 더보기
    •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도
      여간 착한 분이 아니지요.
      곁에서 많이 힘들었을 것같습니다.
    •  한스21.09.14 16:37답글기능 더보기
    • 아닙니다.그와 지내는 시간 저도 행복했습니다.
      비록 병마에 마음 고생 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도
      그를 아끼는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았으니까요.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손수건21.09.14 13:18답글기능 더보기
    • 한참 안 보이셔서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저는 요새 더 많이 바쁜 생활의 연속이었지요.
      착하게 살다 가는 이들은 신의 세상에서 더 많은 행복을 누린다고 하더군요.
      반갑습니다.
    •  한스21.09.14 16:39답글기능 더보기
    • 한국을 가려니 격리면제 서류등 코로나 때문에 귀찮은
      일도 생기고 주변이 어수선 했습니다.
      항상 바쁘게 살아가시니 세월 가는줄도 모르시겠습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마론21.09.14 16:26답글기능 더보기
    • 음, 거 참 매우 안타까운 이야기군여!!

      착하고 심성 좋은 사람과 악랄하고 모진 사람, 과연 두 사람중에
      누가 더 자기 방어력이 쎄고 오래 살아 갈까?

      당연 악랄파지요~

      착하고 심성 좋은 사람은 세상에서 받는 상처가 너무 많습니다.
      그 하나 하나가 작은 면도칼처럼 온 몸을 짓 이기게 되고 결국
      견딜수가 없게 됩니다. 특히 마음이 약하고 상처로 인해 슬픈
      마음이 많이 들수록 폐가 상하게 된다는 거 ~

      그렇다고 세상을 모질게 살아야 하냐? -- NO! 시각의 문제일뿐~

      위 내용은 제가 어느 신부님으로부터 배워 깨우친 사실이랍니다!
    •  한스21.09.14 16:43답글기능 더보기
    • 그래도 착한 사람이 오래 사는건 모르지만 복은
      많이 받았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하게 사는 사람은 복도 겉으로만 받았겠지요.ㅎ

      착한 사람이 오래사는 그런 세상 바래보며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아닐터, 그런 세상은 안온다해도
      저는 그 쪽을 택하겠습니다.

      댓글 감사 드리며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조윤정21.09.14 20:18답글기능 더보기
    • 고인께 하느님 자비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착한 사람은 표현을 못하고
      가슴에 담고 살게 되니 심적으로 괴롭고

      강한 사람은 하고픈 대로 즉시즉시
      훌훌 쏟아버리고 사니 육신이 편하고

      그래서 기도하며
      훌훌 예수님께 모두 다 털어내고

      자비로움 은혜를 받습니다.

      마음에 쌓으면 병이 된다니까요.

      암스테르담 고급스러운 나라가 아닐까
      참 좋으시겠습니다.

    •  한스21.09.14 20:51답글기능 더보기
    • 굳건한 신앙심으로 일상을 보내시니
      마음이 항상 평안하실 것 같습니다.
      세상은 너무 착해도 안되겠지요.

      적당히 타협 할줄도 알아야 말씀대로
      심신이 편할 것 입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푸른비321.09.16 00:49답글기능 더보기
    • 인간 세상은 고해라고 하더군요.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살기에는 적합한 구조가 아니다는 생각합니다.

      심성이 착하였던 그 화가분
      한스님 덕분에 많은 위안을 받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였던 그림을
      그림의 본고장 네델란드에서 공부하였으니
      나름대로 행복하였을거라고 생각됩니다.
      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주야장천21.09.17 12:33답글기능 더보기
    • 착하고 선한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본인이 알게 모르게....그러나 오래 사는 것하고 별개라 생각하지요.
      그건 하늘의 뜻이니 범인이 알 수 없지요.

      잘 읽고 갑니다.

      이국에서 늘 건강하기 바랍니다.
  •  살그머니21.09.17 14:12
  • 마름에
    쏙 들어오는 글입니다
    사람 냄새도 폴폴 풍깁니다

    늘 감동적인 글
    고맙습니다

    착한 사람은
    잘 살고 있습니다
    열심히 산다거나
    선행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잘 산다는 것은
    오래 산다는 것이 아니고
    또 넉넉하게 사는 것도 아닙니다
    내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은 걱은 아닙니다

'사진(소스 겸용) > 카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러스 음악  (0) 2022.01.23
지구를 방랑하는 떠돌이 되어  (0) 2021.09.19
바람 부는 날  (0) 2021.09.19
섬이 나를 부른다.  (0) 2021.09.19
세월은 잘도 갑니다  (0) 2021.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