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의 일입니다. 영국에 사는 선배가 너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인간성이 아주 괜찮은 친구가 하나 있다는 말을 하더군요. 평소 선배는 남의 칭찬에 무척 인색한 편이기에 호기심이 잔뜩 생겼지요. 이후 영국에 갈 기회가 있어 나보다 10여 년 년하인 그 친구를 만나보니 선배 말 그대로 그는 천사 같은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화가가 꿈인 그는,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림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주변 환경이 여의치 않아 영국에서 악전고투 하고 있었습니다. 기본 거주 비자 문제, 런던의 유명 미술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았지만 비싼 등록금 문제 등으로 고민을 거듭하다, 믿고 따르게 된 저에게 더는 못 버티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수밖에 없음을 토로하며 안타까워하더군요. 그간 알게 된 그의 한국 사정도 별로 좋은 편은 아니어서 한국에 가더라도 그가 원하는 그림 그리며 살 수 있는 여건이 안되기에 저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4-5년간의 치열했던 영국 생활을 마감하고 그가 한국으로 돌아간 후, 네덜란드에서 내 몸 하나 겨우 건사하고 사는 형편인 저로서도 막막한 심정이나, 밥만 먹고 살아도 좋으니 좋아하는 그림 그리며 평생 살고 싶은, 큰 욕심 없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름 모색해 보았지요. 이후 자세한 내용은 언급할 필요도 없고 밝힐 수도 없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가 네덜란드에 오게 된 것이 2003년도. 우리의 네덜란드 인연은 그리 다시 시작되었지요. 네덜란드 남쪽, 벨기에가 더 가까운, 우리로 치면 경상남도에 자리 잡은 그는 원하는 데로 돈은 없지만, 밥은 굶지 않으며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살게 되었고 여건상, 거리상, 주로 그가 바람도 쐴 겸 몇 개월에 한 번 정도 내 사는 암스테르담을 방문하며 우리의 인연은 계속 되었답니다. 단조롭지만 평화스럽던 그의 네덜란드에서의 일상에 변화가 온 건 2015년 어느 날. 자꾸 기침이 나고 오래 지속하기에 일 차 홈닥터, 종합병원 검진 후 밝혀진 병명은 폐암 3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저에게 전하더군요. 네덜란드에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 저였기에 전화로 혹은 우리 집을 방문해 투병 과정을 그가 말을 해주어 저도 상세한 내용을 알게 된바, 암이 여러 곳에 분포 수술이 불가하고 항암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작년 제가 한국 방문 중인 10월에 그의 운명 소식을 접하게 된바, 5년여를 암과 씨름하더니 견디지 못하고 헤어지게 되어, 마지막 가는 그의 외로운 길도 마중을 못 가고 말았네요. 그 후배 생각을 하면 인간의 성정은 각자 가지고 태어나고, 후천적으론 기본 성정은 못 바꾼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는 비록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타고난 심성이 너무 고와 그 많은 시련 속에서도 맑고 곱게, 주변 환경, 사회에 대해 원망 하나 없이 정말 열심히 살았던 친구임을 제가 잘 알기에 그의 짧은 생이 더 아쉽습니다. 착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이 복도 많이 받고, 오래 살아야 할 텐데 세상은 꼭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신앙심 깊은 분들이야 그 고운 심성을 더 높은 곳, 하늘에서 쓰기 위해 데려 깄다 말씀들을 하실지 몰라도 저는 그냥 아쉽기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모순덩어리인지 우리의 삶에 정의는 있는 것인지 회의가 들기도 하는군요. 코로나 시즌이여 가족이 한국에서 오지도 못하고 홀로 외롭게 생을 마감한 후배를 기리는 뜻도 있을 터 10월에 한국에 가면 인천에 그의 여동생과 누이가 살고 있어 만나볼 생각입니다. 언젠가 후배와 한국에 가 만나본 적이 있는데 저한테도 참 잘해주던 아주 착한 사람들이랍니다. 착한 사람들이 복도 많이 받으며 오래 사는 그런 세상은 언제나 오게 될까요. 그런 세상은 없고 세월은 그냥 우리의 뜻과는 다르게도 흘러가는 것, 그런 게 인생인가 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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