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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밥 잡수세요

한스 강 2023. 7. 23. 17:48
인터넷상에서 접하게 되는 수많은 글 중, 유독 마음에 와닿는 글이 있다.
잘 쓴, 아름다운, 혹은 감동을 주는, 그런 구체적인 단어보다는
무언지 모르게 마음에 슬며시 와닿는, " 내가 좋아하는" 글이라는 표현이
제일 적당할 것 같은, 그런 글 말이다.
 
글 속에서 표현된, 혹은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 미루어 짐작하던 그 사람의 품성과,
만나 보아 알게 된 그 사람의 실제 됨됨이와는 판이한 경우가  
"글과 그 사람의 실제 인격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글을 통해 내 나름대로 갖고 있는 그 사람에 대한 첫인상을 신봉하는 편이다.
 
그 사람의 글을 좋아하다 보면, 그의 글을 기다리게 되고,
서서히 글도 좋지만, 실제 "그 사람"에 대해 궁금해지게 되고,
나중에는 궁금증에 나름대로 상상력이 보태어 진 후,
만나 본 적도 없어 얼굴도 모르는 상대를 짝사랑?하게 되는,
그런 난처할 지경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상대가 이성이면 말 그대로 짝사랑이요
상대가 동성이면 브로멘스?


그 사람의 ""을 좋아하는 선을 넘어
  "사람" 까지, 좋아하게 경우도 있는
어쨌든 한 인간이 한 인간을 좋아한다는 것은 나쁜 일은 아닐 터이다.
 
오래전 모 카페에서, 모 회원의 글을  내가 좋아하게 되어
모셔놓고 간직해 놓은 그의 글 중, 한 편을 소개해 본다.


Quo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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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넽 좋은거다
앉아서 그림도 글도 음악도 들으니
요즈음 재주군이 만아 참재미잇게 올려준다
 
좋은 음악을 듣고 잇노라면
밥잡수세요 하고 아내의 노래가 들린다
40년을 들어온노래
 
끼때면 어김없이 불러준노래
허기질땐 무척 듣고싶은 노래 구수한 내음이 잇는노래
사는날까지 듣고싶은노래
 
2초를 부르기위해
한시간넘게 정성을기울이는 노래
들어도 들어도 또 듣고싶은노래
 
여보 밥잡수세요
-------------------------------
Quote
 
그가 카페에 올린 "여보 밥잡수세요" 라는 글 전문이다.
맞춤법, 띄어쓰기, 표현력으로 얼추 짐작해 보면
그는 초로의 지방에 사는 농부?로서
 
출세한 사회 저명인사도 아니요,
, "평범한 촌부 " - 그의 표현에 의하면 - 
지나지 않는 사람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꾸밈없는 글이 좋았다.
 
그의 투박한 짧은 글에는, 진솔하고, 구수한, 사람 냄새 풀풀 나는 함축미가
잔뜩 담겨 있, 나는 그 사람 자체도, 인간적이, 솔직한
품성을 지닌 사람이라는 생각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
 
언젠가부터 자주 올라오던 그의 글이 보이지 않게 되고
나도 그 카페에 흥미를 잃어 탈퇴하게 되어 지금은 옛일이 되어 버렸고,


우리의 유일한 공통 분모라곤, 시대에 대한민국이라는 땅에 태어나,
살았다는 것뿐인, 그야말로 아무렇지도 않은, 둘 사이의 관계로,
나도 얼굴도 모르고 그는 나라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자체도 모르는 체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다가 가게 될 터이다.
 
그렇지만 생사도 모르는 그가 어디서이던  글을 계속 써서
혹 운이 닿으면 그의 글을 한 번 더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때때로 내가 그를 기억하고 그의 글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런 사람과 같이 호흡하며 같은 시대를 걸어가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잠시나마 복 받은 느낌이 들어
세상은, 산다는 것은, 훈훈하고, 아름다운 것임이 틀림없다
 
댓글30추천해요1
댓글
  • 23.06.29 11:40

    첫댓글 카페에서 글을 기다리고
    얼굴 본적 없는 이를 사랑 하신다니
    한스님을 다시 보게 됩니다
    보통 자신의 글 올리는 것이 우선인 사람들이 많은 편이지요
    저 또한 카페에 오른 글을 유심히 살피지 않는 편이라 조금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제목이 의아해서 그새 재혼하셨나 순간적으로 요리 생각했슴다 ~ 낄~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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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23.06.29 17:34

    자신의 글을 올리는 것보다 읽는 재미가
    저는 더 좋더군요.

    청소년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에 열광하거나,
    중 장년이 요사히 유행하는 트로트 가수를 좋아하는 것 처럼

    어떤 이의 ,글을 좋아하게 되면 자연스레 필자를 좋아하게 되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ㅎ

    즐겁게 일상 보내세요.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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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06.29 11:49


    저 역시,
    한스님의 글이 마음 속에 쏘옥 입니다.

    누구신지 모르는 그분,
    매일 밥 지어주고
    때마다 밥상 차려주는 그분의 아내에 대한 생각에
    잘나고 못나고가 아닌,

    "여보, 밥 잡수세요." 란 평범한 일상 속의 그말이
    아내를 대변하는 말,

    정겹게 들려 옵니다.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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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23.06.29 17:42

    단순, 투박하지만 절묘한 표현을
    구사하시는 그 분의 글이 좋더군요.

    그 분 말씀 대로 평범한 촌부의
    소박하고, 진솔한 일상을 시 같은 언어로 그려내시어
    한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ㅎ

    댓글 감사 드리며 건강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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