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omise. 한국인의 미소. KBS의 리포터가 사고로 숨진 이언의 소식을 전하다 긴장한 듯 ‘모델 겸 연기자 이언’을 ‘모델 겸 인기자 이언’이라고 잘못 발음한 뒤 민망한 듯 살짝 웃음을 지은 것이 망자에 대한 결례라면서 네티즌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그게 그렇게 비난을 받을 사안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한국인의 미소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내재 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의 논설위원이었던 고 이규태님의 ‘한국인의 의식구조’라는 책에 한국인의 미소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구한말에 미국 선교사가 나루를 건너는데 사공의 잘못으로 선교사의 옷이 물에 젖었다. 이 선교사로부터 뺨을 맞은 사공이 웃었는데 선교사는 자기를 비웃는 줄로 알고 사공을 더 때렸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기방(妓房)에 들어 온 기생을 손님이 퇴자를 놓았을 때, 그 기생의 야릇한 미소에 대한 설명이다.
한국 사람들은 무안할 때도 웃는다. 92년도에 한국의 회사로부터 고급 요정에서 접대를 받게 되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한 호스테스가 퇴자를 맞고 나갔다. 그 때 그녀가 지은 미소가 바로 이규태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미소였다. 방에 들어 와서 인사밖에 한 것이 없는데 퇴자를 맞았으니 분명 미모가 마음에 안 들었다는 말이다. 가끔은 자신의 카리스마를 과시하기 위하여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래도 그렇지 힘없는 상대를 대상으로 그런 행동은 옳은 짓이 아니다.
내 의협심이 발동하여 ‘이런 넘들과 무슨 사업을 하겠는가’하면서 머리가 복잡해졌지만 내가 게스트(guest) 입장이니 그런대로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손님들은 몇 시간동안 의미없는 이야기들로 끝이 되겠지만 호스테스의 입장에서는 그게 인격적인 모독이 되기에 오래 남을 수 밖에 없다.
상담(商談) 자체도 진전이 안 되어서 포기를 하고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교포넘들' 소리라도 차단할 겸, 공술 얻어 먹은거나 갚을 요량으로 같은 요정에 상대회사를 초대하여 지난번에 퇴자를 맞은 그 호스테스를 내 파트너로 앉혔다. 술이 좀 거나해지니 상대회사의 회장이 “지난번엔 제가 결례를 했습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이렇게 좋은 곳을 알게 되어 제가 오늘 다시 모셨습니다” 그 결례라는 말이 내 의도와 일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다음날 우리측이 제안한 내용 그대로 계약이 체결 되었다. 그런데 술값이 $,$$$ 딸라나 나와서 기절할 뻔 했었다. 은은한 한국인의 미소, 그 속엔 호탕한 서양인의 웃음보다도 더 깊은 의미가 있고, 또 다른 미소엔 사과의 의미도 들어 있다.
한국 사람이 한국인의 미소를 오해 한다면 어찌 한국인이라 하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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