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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벨테브레의 고향 -De Rijp

한스 강 2007. 9. 15. 07:05

히딩크 덕에  양국간 서로 더 알려지게 된 네덜란드...꽃과 풍차의 나라..그 다음엔..
아마 낯설지 않은 축구선수 이름.. 요한 크루이프, 굴리트, 반 바스텐, 등등이
떠올려지겠지요.  더듬어 올라가게 되면 하멜 표류기로 유명한 하멜, 벨테브레등이
우리 역사에 남아있는 네덜란드인 이랍니다. 그 중 벨테브레에 관해  학창 시절의
기억을 정리해 보기로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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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Jan Janse Weltevree)(1595-1657)

 

네덜란드 사람 얀 얀스 벨테브레는 21세에 선원이 되어 1626년 일본으로 가던 길에
폭풍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하였다. 당시 조선은 외국인이 오면 돌아가지 못하게 하고

생활비를 주어 살게 하였다. 그래서 벨테브레는 훈련도감에 소속되어 신형 대포를

만드는 방법과 사용법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벨테브레의 이름을 박연이라고 하게 된 것은 벨테브레의 벨에서 박이라는 성을 따고
연은 얀과 소리가 비슷하여 지은 것 같다. 그는 훈련대장의 큰 신임을 받았으며 조선여자를
부인으로 맞아 1남 1녀를 두었다.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된 것은 하멜 표류기 때문이다.


하멜이 난파하여 한반도에 들어온 것이 1653 년의 일이다. 그 때 통역을 맡게 되었으니..
하멜 보다 이미 27 년 앞서 한반도 땅에 들어와 살고있던 최초의 외국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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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길어졌으나 대강 인터넷을 뒤져 정리하다 보니 위와 같이 되네요.

연유야 어찌되었던 그 옛 시절 이역만리 한국땅에 귀화해 한국인으로 살다, 한국땅에 묻힌
벨테브레..그를 기억해보기 위해 그의 고향인 De Rijp 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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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꼭대기 왼쪽에 조그마하게 보이는 레이프(De Rijp)는

암스테르담 북서쪽, 자동차로 20 여분 거리에 위치한 인구 4천명 정도의 작은 마을입니다.
16,17 세기 청어잡이 , 고래잡이 어업이 성행하던 어촌으로 당시 이 곳 출신 선원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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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의 전형적인 간척지(Polder) 풍경이지요.  시종일관 단조로운 목장 풍경속, 이십여분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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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입구 도착, 워낙 작은 마을이여 이웃한 Graft 라는 마을 포함,단위 행정구역 -시청을 운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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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부터 썰렁, 도착시간이 오후 1시경인데..사람이 별로 안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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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길을 거쳐  들어가 소위 중심가를 찾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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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드디어 그럴듯한 건물들이 보이네요..보이는 건물은 계량소? 건물이랍니다.
우리로 이야기하면 농산물 집하장, 무게 달고 가격 정하고..농협 중앙 창고 같은..
한마디로 마을의 중앙에 위치하며 중요한 역활을 담당했던 건물로 ,
각 도시마다 가장 눈에 띠는 건물이 저 계량소 건물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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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오늘의 목적지, 레이프 대교회 뒷편 모습입니다. 이 대교회 정면에 벨테브레 동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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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그마한 동상이 벨테브레가 이곳 출신이였다는 유일한 흔적이랍니다.
De Rijp 가 1654 년 대화제를 겪어, 시청의 기록이 모두 타 버린 관계로
벨테브레에 관한 기록도 전무한 실정이여,1991 년 우리나라, 관계 기관의 협조로
저 자그마한 동상이라도 설립해 양국간의 의미를 되새겨 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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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 도 안되는 것 같은 자그마한 동상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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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 아래 네덜란드어, 영어로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Jan Janszn. Weltevree(1595-1657)

(beeld door/statue by Elly Baltus te Bergen N.H.)

-북 홀랜드, Bergen 출신, Elly Baltus 작품-


Rijper zeeman.Strandde in 1626 in Korea.Werd adviseur van keiser,stierf in Korea,algemeen bekend als Pak Yon(mijnheer Jan).Een beeld als dit is in mei 1991 aangeboden aan de stadt Seoul. -레이프 출신 선원. 1626년 한국해안가에 난파, 표류한 후 당시 한국왕조의 어드바이저로 근무,한국에서 사망, 박연으로 일반에게 알려져 있음.이 동상의 다른 복사판도 1991 년 5월에 서울에 기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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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테브레 할부지 사진도 찍었으니 이제 슬슬 산보 시작....이런 데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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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교회도 다시 보이는 길을 어슬렁 거리며 걷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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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주저앉았습니다. 카페이름이 "고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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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겸 먹었습니다. 콜라와 " 농부가 먹는 오므렛"

영감님과 보통 오므렛을 잘 시켜 먹습니다. 딴 빵보다 푸짐한 느낌이 들어서리..

시골이라 그런가? 안 비싸네..ㅎㅎ.. 다 합쳐서 이만원 정도 영감님이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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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은 다음, 마을 산보하다 보니 초등학교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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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님 뒷모습도 찍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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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 장 찍어 달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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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거쳐서 다시 주차장으로 .

 

촌동네에서 뭐 할일도 없고 좁으니 산보도 그게 그거고 ...

이제 집에 갈 일만 남았네...

 

12 조금 넘어  집에서 출발, 도착하니 오후 3시경 되네요.


오늘은 날씨도 괜찮아 외곽으로 산보 겸  그 옛날, 나와 반대로..ㅎㅎ

한국땅에서 말년 보낸... 벨테브레 영감님을 한 번 기억해 보았답니다.

 

집에 도착 하자마자 사진 정리해서 바쁘게 글을 올리려니 .. 영 어수선하나..
그냥 적당히 잘 보셨지죠..그럼 다음 기회에 또 뵙기로 하고..
환절기에 몸 건강 ,마음 건강 하시기 바라며...여러 회원 님들 안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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