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해송(海松 )

[스크랩] 내 안에 너 있다

한스 강 2008. 2. 3. 20:27
내 자아의 어둡고 깊은 심연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저 정체 모를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가? 의식과 무의식의 바다, 그 혼돈의 수면에서 끊임없이 자맥질하고 있는 저 정체를 알 수없는 존재 말이다.

신화를 배우면서 어렴풋이 그 정채 모를 존재의 원형을 신화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비단 남신뿐만이 아니라 여신들의 원형도 내 안에 있음을 알았다. 누구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양 형질을 유전 받고 태어나듯이 모든 인간들에게는 남녀 모든 신들의 원형이 적당히 섞여 있을 수밖에 없지 싶다.

우선 떠오르는 신은 제우스다. 그는 올림포스를 지배한, 카리스마가 넘치는 권력과 의지의 신이다. 그는 필요할 경우 단호하게 결단한다. 평생을 직업군인으로 살아온 나는 한 부대의 지휘관까지 하였으니 나에게 제우스적인 기질이 없었다면 아마 그 일을 성공적으로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휘관이란 매번 뭔가를 결단하고 그 책임을 고스란히 감수해야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대령으로 연대장을 마지막으로 군 생활을 접은 것을 보면 진정한 제우스는 못된 듯하다. 말하자면 내 안에 있었던 것은 사이비 제우스였지 싶다.

제우스는 바람기가 많은 신이다. 그는 마음에 드는 여자는 반드시 정복하고야마는 신이다. 지금이야 그렇지 못하고, 그런 열정도 식은 지 오래지만, 젊었던 시절에 나에게 그런 바람기가 없었다고 말 할 수 없으니 그 또한 그렇다.

성격 면으로 보면 아무래도 하데스를 닮은 것 같다. 그는 어두운 지하세계에 은둔한 채 지상의 것들과는 절연한 채 지냈다. 그는 자신의 세계에 어떤 누구의 범접도 허용하지 않았다. 나 역시 견고한 내 자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고 누구의 개입도 거부한다. 내 의식세계 역시 지하세계처럼 어두운 편이다. 내 성격은 그리 밝은 편도 아니고 사교적이지도 못하다. 내성적이고, 냉소적이며, 음울한 편이다. 하데스의 성격이 그렇지 싶다.

무엇보다도 하데스를 닮은 점은 그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다시피 하여 아내로 만들었듯이, 나 역시 그 비슷한 과정을 통해 아내와 결혼했다. 나는 일찍이 에피큐리즘의 신봉자였고 허무주의자였다. 내가 쾌락 때문에 사귄 수많은 여자들은 허무한 존재들이었다. 나는 청순한 인상의 아내에게 첫눈에 반했다. 나는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쥐뿔도 내세울 것이 없었지만, 전쟁터에서 치밀하게 작전계획을 세우듯이 용의주도하게 접근해서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에게 감언이설로 석류를 먹였듯이 나 역시 아내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내 석류를 먹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내 원형은 헤파이스토스를 닮은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대장간에서 칩거하며 온갖 새로운 것을 만드는 재미로 산 고독한 신이다. 그는 다른 신들과 어울리지 않은 채 아내인 아프로디테의 바람기에도 은인자중하며 오직 창조의 즐거움 속에서 살았다.

그는 태어나자말자 버림받은, 콤플렉스가 많은 신이다. 누구나 자신의 내면에 타인이 알지 못하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콤플렉스에 함몰되지 않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할 때 창조의 동기가 형성된다. 콤플렉스에 함몰되는 자는 패배자에 지나지 않으나 그것을 극복하는 자는 창조의 승리자가 된다. 저명한 문학가, 예술인 대부분이 그랬다. 그들은 콤플렉스 덩어리였다.

예술가는 자신의 대장간에서 고독하게 창조에 몰두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지향하는 것은 새롭고 완벽한 것들이며, 그것을 위해 끝없이 고뇌하는 장인들이다. 풍로에 불을 피우고, 그것이 꺼지지 않게 끊임없이 풀무질을 하며, 벌겋게 쇠를 달구어 망치로 두드리고 단단해질 때까지 야금을 거듭한다. 소설가 역시 그렇다. 그들은 하나의 언어, 하나의 문장, 한편의 소설을 만들어내기 위해 고뇌하며 다시 고치고 또 고친다.

헤파이스토스는 최초의 여자 판도라를 자신의 대장간에서 만들어낸 신이다. 소설가들 역시 자신의 대장간에서 새로운 판도라를 만들어 내고 있다. 소설이란 따지고 보면 새로운 인간형을 만들어 내는 작업이며,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 인물들이 말하고 행동하며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과정을 문자로 추적하는 작업이다.

내가 60살이 훨씬 넘은 나이에 문창과에 들어와 새삼 소설을 공부하는 것도 나의 대장간을 만들어 헤파이스토스처럼 판도라를 만들어내는 방법과 생명을 불어넣는 기법을 전수받고 싶은 오랜 욕망 때문이다. 내 내부에 헤파이스토스의 원형이 없었다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을 것이다.

창조는 몰두의 산물이다.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뭔가에 몰두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소설 역시 몰두의 산물이다. 소설을 공부하는 것이 나는 즐겁다.

헤파이스토스여, 내 안에 너 있다.

올림포스의 주신은 제우스인지 몰라도, 내 안의 주신은 헤파이스토스 바로 너다. 그렇지만 너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제우스도 있고, 하데스도 있고, 아테나, 심지어 아프로디테도 있다. 고대 그리스사람들이 모든 신들을 경배했듯이 나 또한 모든 신들을 경배함이니 노여워 말지어다.

헤파이스토스여, 제발 나에게 그대의 축복을 내려달라.

출처 : 아름다운 60대
글쓴이 : 마르케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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