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루한 옷차림의 중년 남자가 꾸벅꾸벅 졸고 있다.
오늘 일이 일찍 끝났건만 꽤 힘들었던지
오후 이 시각에 저리 피곤한 기색이라니.
두 손으로 움켜잡은 저 배낭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작업에 필요한 연장 도구, 그리고 아낙이 새벽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며
건넨 도시락통이 들어 있을 것 같은 내 느낌이 틀렸더라도
아내의 사랑이 가득한 도시락,
한 가정의 행복을 보장하는 신성한 도구임엔 틀림없다.
전철의 흔들림에 박자 맞추어 아직 졸고 있는
그를 뒤로하고 길을 나선다.
변함없는 고등어 골목길.
내 들리든 안 들리든 그곳은 여전하고
무관심에 익숙한 나는 오히려 편하다.
오늘도 두 단어 “고등어“ ” 잘 먹었어요“
그들과 작별하고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조금은 처량하다.
전철의 사내는 졸음에서 깨어나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는 남편을 반가워하는 아내와
사랑스러운 가족의 품에서 하루를 마감할 터이지만
나는 저 도시의 한복판 골목길에 숨어있는
허름한 대폿집에서 홀짝 거리다가
늦은 밤거리를 휘청거리며 귀갓길에 오를 터이니,
그에 비해 얼마나 비생산적인지! 생각하니 쓴웃음이 나온다.
대폿집에 들어서니 일주일밖에 안 되었건만
오늘도 변함없이 반겨주는 사장이 고맙다.
작년 10월 귀국 후 우연히 알게 되어 다니다 보니
익숙해진 얼굴도 많아지고
안주를 안 시켜도 되는 이곳이 나는 좋다.
이곳을 자기 집처럼 들락거리며
술에 쩌들어 가뜩이나 비좁은 곳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몇 인사들도 오늘은 눈에 안 띄니 다행스럽다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중요하지도 않고 서로 알 필요도 없는 이곳 사람들,
대화하다 보면 그중 마음이 가는 사람들이 있게 마련,
아직 전화번호도 교환하지 않아
어느 순간 헤어짐도 찰나일 터지만
서로 속내를 터놓고 남은 세월 평생을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서로 술잔을 교환하는 이 시간이 나는 더 없이 즐겁다.
오늘 하루를 평안하게 보내게 해 주시어 고맙습니다.
그 어떤 이에게 감사의 기도하고 싶은,
아무 일 없는 조용한 하루가 이렇게 또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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